충주에서 대구로 점프를 하고 비는 그쳤지만 다시 충주까지 되돌아가서 이어갈 엄두가 나지 않고, (이 때만해도 고속버스로 이동할 생각을 하지 못 하고, 태워줄 사람도 없어서) 더 있다가는 국토종주를 이어서 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어 하루만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길을 나섰다. 결국 충주~대구 구간은 건너뛰고 대구부터 다시 시작하여 부산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처음 서울에서 무거운 공구까지 넣은 백팩을 메고 출발했는데, 출발한 지 얼마되지 않아 왼쪽 어깨에 문제가 생겨 무척 고생하게 된다. 탑튜브와 핸들바에 겨우 백팩을 묶어 가며 이동한 어려움을 겪은 터라, 대구에서 출발할 때는 핸들바에 걸어쓰는 바구니에 백팩을 넣고 출발하게 된다. 이 때, 자전거를 탈 때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대구 강정고령보: 주변 환경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이 때는 디아크도 없었다.)

달성군 논공읍 인근의 낙동강변: 옅은 안개와 강, 붉은 잎의 가로수로 몽환적 느낌

달성 달성보: 어르신 단체 관광객이 북적북적. 뭐 볼게 있는지?

미리 찾아본 경로 계획에 따라, 다람재를 우회하여 달성군 구지면으로 가로질렀지만 정작 무심사 고갯길을 미처 몰라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음에도 상당한 체력 소모를 겪게된다. 무심사 뒷산을 넘으면 합천창녕보는 지척이다.
창녕 무심사 입구: 엄청난 고갯길에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에도 어려운 힘든 구간이다.

합천 합천창녕보

이후, 악명 높은 박진고개와 영아지마을을 피하기 위해 1021번 지방도로 우회했으나 남지 진입부에서는 오르막으로 힘들었다. 몇년 후에는 장마면으로 우회하거나 영산면을 경유하여 남지를 건너뛰고 창녕함안보로 가는 경로를 알게 됐지만, 당시에는 지방도의 경사도까지 체크하거나 국토종주 구간을 아주 크게 벗어나서 이동할 융통성은 없었다.
남지에 들어선 후 남지읍내에서 길을 조금 헤맨 후 다시 창녕함안보로 향하게 되는데, 돌이켜보면 남지에서 숙박을 했어야 했다. 당시에는 숙박비를 쓰는 것이 너무 아까워 마음속 갈등 때문에 대책없이 그냥 진행하게 되었는데, 남지 이후에는 숙박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창녕 창녕함안보

창녕함안보 이후 밀양 수산리까지는 주변 풍경이나 도로 상태가 매우 좋았다. 수산리를 지날 때쯤 해가 져서 어두워지기 시작했는데, 숙박비를 쓰기 싫은 마음에 '아, 몰라'라는 대책없는 무의식이 작용하여 야간 라이딩에 대한 대비도 없으면서 무작정 여정을 이어갔다. 이 때까지 아침에 싸 갖고 온 복숭아 몇개 먹은 것과 더운 날씨로 엄청나게 흘린 땀 때문에 마신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 수입이 줄어든 휴직 중인 상황으로 금전적 지출에 위축되고, 정서적인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자학적 심리 같은 것이 작용하여 밥도 사 먹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그 상태로 그냥 목적지로, 목적지로 여정만 이어 갔던 것 같다.
밀양 삼랑진을 지나면서부터는 불빛도, 가게도 없는 길을, 날이 흐려 달빛조차 없는 길을 건전지 살 때 같이 따라 온 바로 앞만 겨우 비추는 희미한 전등에 의지하여 천천히 진행했다. 사실 빨리 진행할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맞은 편에서 밝은 라이트를 켜고 라이딩하여 지나간 커플이 되돌아서 나를 앞질러 갈 때, 그 불빛에 의지하기 위해 미친 듯이 따라 붙었다. 한참을 따라 가는 데에 성공했지만, 결국 그들은 멀어져 갔고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 붇고 더운 날씨 탓에 안장에 닿는 부위가 모두 짓물러 자전거에 앉지도 못 하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칠흑같은 어둠을 그렇게 터벅터벅 걸었다.
피로와 굶주림과 무서운 어둠 속에 정말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걷고 걸어 거의 탈진 상태에서, 새벽 어스름과 함께 빗방울이 떨어질 때쯤 낙동강하구둑에 도착하게 됐다. 종점에는 다다랐지만 더 이상 걸어갈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에너지가 고갈된 탈진 상태이기도 했지만, 엄청나게 흘린 땀을 물로만 보충하여 체내 미네랄 농도가 옅어져 쇼크가 온 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 당시에는 이러다가 쓰러져 죽을 수도 있겠다는 바람?!도 좀 작용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지 않기로 약속하고 떠나온 여행이었지만 내 마음 속엔, 나와 또 내가 서로 부딪치고 있는 심리 상태였다.)
쓰러지기 직전 상태에서 일단 부산역으로 방향을 잡고 마지막 힘을 내어 겨우 겨우 발걸음을 내 딛는데, 빗줄기마저 거세지기 시작했다. 낙동강하구둑을 건너 하단동에 접어 들어 우의조차 꺼내 입을 기력조차 없는 그 시점, 24시간 콩나물국밥집이 눈 앞에 보여 바로 들어갔다. 의자에 거의 쓰러지듯 앉아 국밥 한 그릇을 먹고 나니 희미했던 정신이 돌아오며 온 몸의 통증과 피로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국밥집을 나오면서 우의를 꺼내 입자, 비는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로 바뀌고 그렇게 몇 백미터를 움직였지만 쏟아지는 잠에 한 걸음도 더 걸어가지 못 해 도로변 버스정류장에 쓰러져 눈을 감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하며 쏟아 붓는 빗물의 차가움에 몇 분 간격으로 놀라 깨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인근 지하철역이나 다른 장소로, 도저히 움직이지 못 하는 상태였다. 그렇게 얼마간 쓰러져 있은 후에 비가 좀 잦아들고 다시 움직일 힘이 생겼음을 느끼고, 지하철로 이동할 생각도 하지 못 한채 빗길을, 터널을 거쳐 부산역까지 걸어서 겨우 이동했다. 무궁화호 플랫폼에서 역무원이 자전거를 못 싣게 제지하는 것을 공구로 앞바퀴를 빼며 탈진으로 인한 짜증이었을까 화를 내며 막무가내로 대구행 가는 기차에 올랐다.
대구에 와서 자전거는 버리고, 탈진의 후유증을 몇일 앓아야만 했다. 이렇게 나의 첫 자전거 국토종주 시도는 절반 만을,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며 미완으로 끝났다.
이 여정으로 나는, 그 동안의 정서적인 심각한 문제를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고 추가로 자전거 여행에 대한 다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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